반도체 밸류체인, 설계·파운드리·후공정은 뭐가 다를까
반도체 뉴스를 읽다 보면 팹리스, 파운드리, 후공정, 소부장 같은 말이 설명 없이 지나간다. 같은 “반도체 회사”라고 묶여 있지만 하는 일이 전혀 다르고, 그래서 같은 업황 뉴스에도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이 산업이 어떻게 쪼개져 있는지부터 보면 뉴스가 다르게 읽힌다.
왜 한 회사가 다 하지 않게 됐나
초창기 반도체 회사는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부 직접 했다. 문제는 공장이다. 반도체 생산 라인은 짓는 데 조 단위 자금이 들고,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그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래서 산업이 두 갈래로 갈렸다. 설계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맡기는 쪽과, 생산 설비를 갖추고 남의 설계를 대신 만들어주는 쪽이다. 분업이 일어난 근본 원인은 기술이 아니라 자본 부담이었다.
다섯 개의 자리
| 구분 | 하는 일 | 자본 부담 |
|---|---|---|
| 팹리스(Fabless) | 설계만 한다. 공장이 없다 | 낮음(인력·설계자산 중심) |
| 파운드리(Foundry) | 남의 설계를 위탁받아 웨이퍼로 만든다 | 매우 높음(생산 라인) |
| IDM(종합 반도체) | 설계·생산·패키징·테스트를 다 한다 | 매우 높음 |
| OSAT(후공정 수탁) | 패키징과 테스트를 위탁받아 한다 | 중간 |
| 소부장 |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한다 | 분야별로 다름 |
팹리스는 설계만 한다. 공장을 안 짓기 때문에 고정비 부담이 작고, 대신 설계 역량과 지적재산이 전부다. 퀄컴이나 애플처럼 칩을 설계하되 직접 만들지 않는 회사들이 여기 속한다.
파운드리는 그 반대다. 자기 제품을 팔지 않고 남의 설계를 대신 생산한다. TSMC가 대표적이다. 여러 팹리스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므로, 특정 고객사 하나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수요를 받는 자리에 있다.
IDM은 설계부터 웨이퍼 제작, 패키징, 테스트까지 전부 자기가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제품 규격이 표준화돼 있어 대량생산에 유리하고, 그래서 메모리 쪽에 IDM 형태가 많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인 IDM으로 분류된다.
앞공정과 뒷공정이 나뉘는 지점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단계까지를 전공정, 그 웨이퍼를 잘라 칩으로 만들고 포장하고 검사하는 단계를 후공정이라 부른다. 후공정은 크게 패키징과 테스트로 나뉜다.
패키징은 칩을 외부 충격과 열로부터 보호하면서 전기 신호가 드나들 통로를 만드는 일이고, 테스트는 그 칩이 규격대로 작동하는지 걸러내는 일이다. 이 후공정을 위탁받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OSAT다.
후공정은 오랫동안 “회로를 다 새긴 다음의 마무리 작업”으로 취급됐다. 그런데 공정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회로를 더 잘게 못 만들면 칩을 여러 개 쌓거나 붙여서 성능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게 정확히 패키징의 영역이다. 첨단 패키징이 정책 과제로까지 다뤄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의: “후공정은 단순 조립”이라는 인식은 오래된 것이다. 적층·연결 기술이 성능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면서 전공정과 후공정의 경계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 다만 이것은 기술 흐름에 대한 설명이지, 어떤 업종이 유망하다는 판단은 아니다.
소부장이 따로 언급되는 이유
소재·부품·장비는 앞의 네 자리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전부에 공급한다. 노광 장비처럼 대체 공급자가 사실상 없는 품목이 있고, 이런 병목은 한 회사의 사정이 산업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는 구조를 만든다.
공급망 이슈가 뉴스가 되는 지점이 대개 여기다. 완제품 수요가 아무리 늘어도 특정 장비나 소재가 막히면 생산 일정이 그만큼 밀린다.
이 구조가 뉴스를 읽는 데 주는 것
같은 “반도체 업황” 뉴스라도 자리마다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설비투자 확대 발표는 장비를 공급하는 쪽과 그 설비로 생산하는 쪽에 서로 다른 시점의 이야기다. 파운드리 가동률과 메모리 가격은 애초에 다른 시장의 지표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가 국내 반도체 관련 종목과 같이 움직이는 것도 이 분업 구조 때문이다. 지수 구성 종목이 팹리스·장비·파운드리에 걸쳐 있고, 그 회사들이 국내 기업과 같은 공급망 위에 있다. 개별 지표를 볼 때 시장 전반의 분위기를 읽는 지표들과 섞어서 해석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주의: 이 글은 산업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지, 어느 자리가 유리하다는 뜻이 아니다. 각 자리는 경기 국면·기술 전환·공급망 상황에 따라 조건이 계속 달라지며, 구조를 안다는 것은 뉴스를 정확히 읽는 출발점일 뿐이다.
정리
반도체 산업은 생산 설비의 자본 부담 때문에 설계(팹리스)와 생산(파운드리)으로 갈라졌고, 둘을 다 하는 IDM과 후공정을 전문으로 하는 OSAT, 그리고 이들 전부에 공급하는 소부장이 함께 생태계를 이룬다.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전공정과 칩으로 만들어 포장·검사하는 후공정이 나뉘며, 미세화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후공정의 패키징 기술이 성능을 좌우하는 영역으로 올라왔다. 뉴스에 나오는 “반도체”가 이 중 어느 자리 이야기인지 구분하는 것이 첫 단계다.
자주 묻는 질문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경쟁 관계인가요?
아닙니다. 팹리스는 설계를, 파운드리는 위탁 생산을 담당하는 분업 관계입니다. 팹리스는 공장이 없어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고, 파운드리는 자기 제품을 팔지 않고 여러 팹리스의 설계를 대신 만듭니다. 서로의 고객이자 공급자입니다.
IDM은 왜 메모리 쪽에 많나요?
메모리 반도체는 제품 규격이 상대적으로 표준화돼 있어 대량생산 효율이 중요합니다. 설계와 생산을 함께 최적화하는 편이 유리한 구조라 종합 반도체 형태가 자리 잡았습니다. 반대로 용도별로 설계가 제각각인 시스템 반도체 쪽에서 설계와 생산의 분업이 더 뚜렷합니다.
후공정은 왜 최근 들어 중요해졌나요?
회로 선폭을 줄이는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더 잘게 만들 수 없다면 칩을 여러 개 쌓거나 이어 붙여 성능을 올려야 하는데, 그 작업이 패키징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마무리 공정으로 취급되던 후공정이 성능을 결정하는 단계로 올라왔습니다.
소부장은 어느 단계에 속하나요?
특정 단계에 속하지 않고 전 단계에 공급합니다. 웨이퍼·가스·화학약품 같은 소재, 공정 장비, 각종 부품이 여기 해당합니다. 일부 품목은 대체 공급자가 거의 없어 공급 차질이 산업 전체 일정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반도체 회사라고 하면 다 같은 업황을 겪나요?
자리에 따라 다릅니다. 메모리 가격과 파운드리 가동률은 서로 다른 시장의 지표이고, 장비를 공급하는 쪽은 고객사의 설비투자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시점 자체가 다릅니다. 업황 뉴스를 볼 때 그것이 어느 자리에 관한 이야기인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